중세 헤브라이즘과 기독교

그리이스 패권을 둘러싼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헬레니즘 제국과 카르타고의 싸움이 치열할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 공화국이 그리이스인들보다 정치력과 군사적으로 우세한 힘을 기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리이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로마인들의 그리이스 세계정복은 평소 그리이스 미술에 절대적 동경을 가지고 있던 로마인들에게 그리이스의 미술을 단번에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로마인들은 국제적 성격을 띤 미술을 전파하게 된다.

그리이스와 로마 미술이 매우 유사하게 보이는 것은 로마 시대때 활동하던 미술가들이 대부분 그리이스 출신이던가 거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로마인들은 그리이스 시대의 미술품을 복제하거나 수집하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그리이스 미술을 그대로 복제한 것만은 아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리이스 형식을 변형하였다.
그리하여 로마인들은 멀리 북아프리카, 영국, 스페인, 페르시아만, 카스피해까지 그 들의 우수한 유물을 남기게 되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고대와 중세가 나누어진다. 기독교가 천 년간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을 중세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과연 기독교가 천년간 지배하던 시대를 암흑의 시대라 일컽기는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이것은 헬레니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리 해석 될 수도 있게지만 헤브라이즘 입장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황금기를 누린 시대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향락과 퇴폐를 일삼는 로마인들에게 눌려 지내던 약하고 힘 없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수 많은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를 끊임없이 핍박을 하나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고, 또다시 '로마의 모든 길'을 통해 기독교는 전 유럽에 전파되어 진다. 마침내 교회와 성직자는 큰 힘을 갖게 되고 사람 중심의 헬레니즘은 신 중심의 헤브라이즘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호화로운 로마식 건축은 점차로 높은 첨탑을 가진 고딕양식의 엄숙한 모습으로 대치되고, 음악, 회화, 건축, 조각 등의 모든 예술 활동은 신과 예수, 성모, 성자를 찬양하는 데 쓰여지게 된다. 이렇게 전파된 기독교의 사상을, 히브리인에게서 유래됐다 하여 헤브라이즘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 로마신화를 모르고서 헬레니즘을 알 수 없듯이 기독교를 모르고서는 헤브라이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교회와 스테인드 글라스 각종 종교적 기념비, 조각이 왜 산재해 있는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중세의 미술
4세기부터 르네상스가지 약 천 년을 중세라 하는데, 이를 세분하면 초기 기독교 시대, 비잔틴 시대(동로마제국 시대), 로마네스크 시대, 고딕 시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한마디로 기독교를 설교하기 위한 미술이었다. 교회는 성서의 내용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개념의 시각화가 중세 미술의 첫번째 목표엿던 것이다. 즉 초기 기독교 미술가들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그리스도의 힘과 영광, 정신등을 기독교의 도상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비잔틴 시대는 동양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수도원이나 성당의 벽과 천장을 장식하게 되었는데 고대 오리엔트 미술의 장려함이나 엄숙함을 살려내어 그리스도와 그의 권능을 찬양하는데 이용되었다.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틴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렀다. 콘스탄티노플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15세기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멸망될 때가지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로서 천여년간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비잔틴 미술의 주역은 모자이크였다. 로마의 모자이크는 돌조각으로 제작된 반면 비잔틴의 모자이크는 색유리를 불에 구어 만들어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로마네스크란 명칭은 1066년 영국을 정복한 노르만족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수도원과 성당을 건설하게 되는데 이러한 건물 양식을 로마네스크양식이라 불렀다. 이 시기의 특징은 성서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리되 그 내용이 무시무시한 회화들을 주로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을 정신적으로 각성키키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으로서 이 때의 그림은 프레스코 기법에 의해 그려진다.

기독교가 정착되면서 점차로 천상의 동경(구원의 동경)을 구하여 수많은 첨탑과 높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성당이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가 바로 고딕 시대이다. 이로 인해 벽면이 좁아지자 벽화 대신 창유리에 그림을 그리는 스테인드 글래스가 발달하게 된다. 독일의 쾰른 성당이나,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 벽이 줄어들면서 제단화가 등장한다. 중세의 모든 예술은 신앙의 도구로 사용 되었다.

고딕양식의 핵심은 그 이전이 겨우 기독교의 포교를 마친 상태였다면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사실적인 힘을 가지게 된 시기이다. 즉 이때부터는 포교의 차원을 넘어서 모든 생활로 부터 기독교를 제외 시키고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십자군 전쟁 이후 생활과 신앙의 중심은 수도원에서 이제 대 도시의 대성당으로 이동하였으며 새로운 중심지가 된 도시의 자유로운 생활은 새로운 사상과 학문, 예술 등을 반전시키는 토대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래스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회 내부의 벽을 제거하여 높고 넓은 창을 만든 고딕교회의 내부는 빛의 벽이라고 불리는 스테인드글래스로 채워진 건믈을 쉽게 볼 수가 있다.

하늘에 보다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욕구는 높은 첨탑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고딕 양식의 대표적 형상이다. 고딕은 어둡고 답답한 로마네스크 교회와는 달리 밝고 경쾌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였는데 여기에 일조를 한것이 스테인드글래스이다. 이것은 분위기만 바꾼것이 아니라 스테인드글래스의 유리 그림을 통하여 성서를 전달하였던 것이다.

유럽 여행 중 방문하게 된 수많은 교회중에 창문이 없고 답답한 실내에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면 이것은 필히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래된 교회이며 스테인드 글래스와 뾰족한 첨탑이 있는 교회라면 고딕양식의 건물인 것이다. 첨언을 한다면 고딕양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파이프오르간이 있다는 점이니 여행중에 방문하게 되는 교회를 유심히 살펴 볼 일이다.
Posted by hipi